우리 약국 갈까
임승유
소풍이라도 가자는 것처럼 말하니까
호루라기가 생각났다 호루라기를 부니까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피가 돌기 시작했다 손끝까지 가서 불끈 쥔 주먹이 될 거야 숨이 턱까지 차오를 거야 핀셋으로 아스파라거스를 뽑아냈다 목에 걸린 달리아가 호루라기는 고여 있다고 말한다 하늘이 텅 비었다고 말한다
지렁이도 질병사를 할까 귀뚜라미는 구름은 더 작아지고 싶다면 약국에 가는 거다 약국은 알약들의 세계 분말들의 세계 목구멍의 세계
의자처럼 창백하다는 건 뭘까에 대답하기 위해 우린 약국에 가고 있었던 거잖아
오렌지가 먹고 싶었다면 소풍을 가자고 하지 그랬니 대관람차를 탄 것처럼 피로하구나 오렌지가 먹고싶었다면 오늘 아침의 신발 정리와 수첩과 물병을 다 합쳐 오렌지가 먹고 싶었다면
우리 소풍 갈까
그렇게 말하지 그랬니